Cogito와 Period
선은 글이 되기도 하고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점이 이미지를 만든다고 하는 것이 더 논리적일지도 모르겠다. 실타래처럼 뒤엉킨 생각이 적절한 단어와 구조를 가진 문장으로 풀려나갈 때 우리의 머릿속은 비로소 언어로 가득 찬다. 느낌에 더 가까운 생각 속의 언어들을 붙잡아 두고 생각의 논리를 정연하기 위해 기록한다. 생각의 빠르기를 따라잡느라 빠르게 휘갈기다 보면 글자의 부정확한 모양 때문에 글은 그 기능성을 곧잘 잃어버리곤 한다. 그저 선이 되어버린 글은 점으로 닫힌다. 한 문장을, 한 단락을, 길고 긴 과정을 점으로 닫는다. 아직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 ‘나’는 점으로 닫힌 사유의 잠정적 가설을 다시 선으로 열고 또 다른 이야기로 가득 찬 생각의 끝을 점으로 닫는다.
“점은 언어에 소속되며, 침묵을 의미한다. 끊임없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점은 중단, 즉 부재의 상징이며, 동시에 점은 한 존재에서 다른 존재에 이르는 교량 역할을 한다. 이것이 문장에서 점이 지니는 내적인 의미이다.”¹
침묵은 생각의 외연이다. 아직 글이 되지 못한 내부의 소란스러운 생각이 ‘나’를 통해 드러내는 그 자신의 형태이다. 아직 온전한 이름으로 존재하지 못해 수많은 부연 설명이 필요한 것들과 나의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생각들을 자기검열하는 모습이다. 마땅치 않은 느낌과 부당하다는 주관적인 느낌을 이해받기 가능한 영역의 사고와 보편적인 언어로 전환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온점의 모양으로 침묵한다는 것은 고요하지만 소란스럽다. 정돈되지 않은 생각들은 침묵 속에서 글이 될 준비를 한다. 선이 이미지로 옮겨지며 생각은 글이 된다. 쏟아져 나온 글들은 서사를 만들고 다양한 모습으로 거대하게 확대 된 온점을 침범하고 글들끼리 뒤엉키면서 ‘침묵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무엇이 침묵인지 그리고 무엇을 침묵하고 있는지를.